본문 바로가기
나만의 생각

초간단 에세이, 초간단 소설 5편

by BUlLTerri 2018. 5. 26.
반응형


 현대를 살아가며 느낀 점들에 대해 에세이, 또는 소설 형식을 빌려 짧게나마 글을 써봤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그리고 편리한 기술들에 대해 느낀 점을 바탕으로 작성했다. 이 글을 읽고 각자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나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혼자라서 외롭다. 아니 혼자라서 자유롭다. 


 내 이름은 오대수. 이 독방에 갇힌지 15년이 지났다. 방안에는 낡은 간이 침대와 TV 한 대뿐이다. 나는 취침 시간과 운동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TV를 본다. 이유도 모른 채 독방에 갇힌 나로서는 TV만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다. 오늘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날이다. 군만두가 아닌 다른 음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TV로는 맛도 냄새도 느낄 수가 없다. 밖으로 나가서 살아있는 싱싱한 음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끝나고 가요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TV 속 섹시한 춤을 추는 저 여가수는 내 상상 속 여자친구다. 그녀와 손을 잡고싶다. 그녀를 안고싶다. 그러나 내 손에는 딱딱한 TV 브라운관이 만져질 뿐이다. 외롭다. 이 독방에서 하루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나의 세상은 15평의 집이 전부다. 나는 20살 이후로 이 세상을 벗어난 적이 없다. 사람들은 나를 히키코모리라고 부른다. 나의 세상은 완벽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 되어있다. 불결한 바깥 세상의 사람들에 의해 훼손될 위험은 없다. TV는 나의 완벽한 파트너다. 특히 홈쇼핑 채널은 나의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가끔 바깥 세상이 궁금할 때면 뉴스를 시청한다. 오직 TV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그들과 눈을 맞추고 살을 맞닿는 일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나의 세상을 혼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자유, 홈쇼핑 채널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완벽한 자유를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어떤 이는 자의에 의해 어떤 이는 타의에 의해, 그들은 혼자라 자유롭고 외롭다.  



스마트한 연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들여 편지를 쓴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다. 해가 뒷산 중턱에 뜰 즈음 마을에서 가장 큰 미루나무 밑에서 만나자는 내용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언제든지 편지를 전할 수 있도록 안주머니에 편지를 넣는다. 다음날 아침. 물을 기르기 위해 우물가로 가는 도중 그녀를 만났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뜸 그녀에게 편지를 전한다. 해가 산 중턱에 뜨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오늘 따라 해가 느리다.

 많은 연애 매칭 앱들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앱은 자신이 살고 있는 주거지에서 특정 거리 내에 있는 모든 이성과 채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된 스마트 폰만 있으면 손쉽게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 언제 어디서든지 대화가 가능하며 대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새로 연결하면 그만이다. 만남이 편리한 만큼 이별 또한 손쉽다. 이런 손 쉬운 이별을 지칭하는 신조어도 생겼다. 일명 카톡이별이다. 이는 카카오톡이라는 앱을 통해 이별통보를 하는 것을 말한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 스럽게 편지를 써서 상대방을 기다리는 수고가 필요없어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 세상은 인간 관계마저 편리하게 만든다.

 스마트 폰을 연다. 손가락을 능숙하고 빠르게 움직여 메시지를 작성한다. 헤어지자는 메시지를 입력하고 전송버튼을 누른다. 답장이 오기도 전에 전화번호부에서 그녀의 이름을 삭제한다. 그리곤 어플을 켜고 새로운 이성을 검색한다. 참 편리한 스마트 세상이다. 


가족사진

 

 서울대공원 동물원. 우리 안 사자는 잠을 잔다. 사자 우리 앞 작은 꼬마 아이는 분홍색 솜사탕을 들고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는다. 꼬마의 양 옆에는 남자와 여자가 아이의 어깨 위에 손을 얹은 채 하얀 이를 들어낸다. '찰칵' 소리와 함께 그 날의 추억이 기록된다. 사진 뒷 면에는 그 날의 날짜와 함께 '가족사진'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아이의 책상 위 낡은 액자 속 사진의 빛이 바랠 즈음. 아이는 어느 덧 대학생이다. '찰칵' 소리와 함께 빛 바랜 가족 사진은 디지털 카메라 속으로 빨려 드러간다. 적절한 보정 과정을 거친 후 아이의 페이스북 한켠을 장식한다.



편리함 


 녹색 버튼을 누른다. 식수대에서 물이 나온다. 편리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조선시대다. 집 근처에 있는 물가 혹은 우물가로 간다. 물지게에 물을 길러온다. 간단하게 2문장으로 서술했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편리해지면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소중함이 아닐까. 씁쓸하다. 물이나 물건에 대한 소중함 보다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잃게 된것이 가슴을 텁텁하게 만든다. 철 없는 중고딩들이 '여친구함, 남친구함' 따위의 글을 올리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스크린을 누른다. 메시지를 보낸다. 친구를 만난다. 참 편리하다. 우리들의 관계는 참 '편리'하다.



충주 월악산행 시외버스를 탔다. 어. 내 자리에 누군가 앉아 있다.


 눈가에 깊게 패인 잔주름, 히끗한 뽀글머리, 할머니다. 할머니가 앉아 계신 자리는 사실 내가 예약한 자리다. 머뭇거리며 서있는 나에게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말씀하셨다. "내자리에 누가 앉아있더라고, 학생 일로와 같이 가". 나는 어색한 몸짓으로 자리에 앉았다. 대뜸 할머니는 커다란 손으로 팝콘을 한 움큼 쥐어 주셨다. "먹어, 같이 먹으려고 산거야 학생들은 많이 먹어야지." 사양하려 했지만 할머니의 커다랗고 따뜻한 손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팝콘을 씹고 있었다. 한 움큼 또 한 움큼. 할머니는 내 손에 팝콘이 사라질 때마다 팝콘을 다시 쥐어 주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안.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있는 내 손이 유난히 작아보인다. 작고 차가운 손. 30년 즈음 지나면 내 손도 할머니 손처럼 커다랗고 따뜻해질 수 있을까? 강남. 강남역에 도착했습니다. 지하철 안내방송과 함께 할머니의 목소리가 환청 처럼 들린다. "학생 조심히 가".




반응형